유성노조의 최근 사건을 생각하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1. 순서상 원래 폭력의 피해자들은 유성노조 노동자들이었다. 2011년에만 용역직원이 노동자들을 향해 차량으로 돌진해 십수명이 부상을 당했고, 26명의 노동자들이 두개골과 안면함몰 등의 중상을 당했었다. 가해자가 밝혀지지도 처벌받지도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때도 유성노조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방해받지 않고 집행되었다. 민주당은 이때 노동자들의 편에서 기업의 폭력에 맞서 야당답게 함께 싸워주지 않았다.

2. 유성기업의 회장이 결국 실형을 살게 되었는데, 그 직후부터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실시되었다. 참여정부는 노사간 갈등으로 인한 손배가압류 남용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임기 중 추진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차령 이남에서 손배가압류 사건을 가장 많이 다뤄본 변호사 출신이라지만 집권 후 이 제도를 아직도 그냥 두고 있다. 노동쟁의에 대해 손배가압류를 인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영국은 금액의 상한을 두고 있는데 조합원 5000명 이하 사업장은 상한이 우리 돈으로 1700만원이다.

3. 그러던 중 이번 사건이 있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절대 반복되지 않아야 할 일이라며 노조를 비판했고, 이례적으로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며 경찰에 대해서도 한소리했다. 나는 경찰에 대한 훈계가 이례적이라 느꼈다.

4. 경찰은 노조원들의 폭력행위가 있다는 사용자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강제로 진입하지 않고 조합원들이 비켜줄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폭행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합원들을 곧바로 연행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이전 정권에서 경찰이 지나치게 한쪽 편만 들었다는 비판을 의식하여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받은 비판과 경찰 스스로의 양심을 추정해 봐도 그럴 것 같다.

5. 경찰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바뀌었으므로 강자인 회사쪽 이야기만 듣고 무리하게 법을 집행하는 오류를 피하고자 했지만, 이해찬 대표는 세상이 바뀐 건 아니라고 경찰에게 훈계한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이 지나친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이런 느낌이다.

6. 형사법과 형벌은 개인의 자력구제, 사적 복수를 엄금하고 있다. 공식적인 폭력은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행사한다. 눈에는 눈, 이엔 이 라고 하는 동해보복의 복수를 금지하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합법적인 폭력을 보유하고 행사하는 유일 주체인 국가는 이것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사용해야 한다. 경찰은 그동안 공정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 불평등한 형벌집행은 당연히 억울함을 낳는다. 국가가 작동되지 않은 곳에서 당연히 피는 피를 부른다.

7. '인간'에서서 '정치'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동물'이다. <인간-정치=동물>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한 번도 진실이 아닌 적이 없다. 나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반정치 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나라 집권여당의 명실상부한 주류, 대표이다. 최소한 그가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절 국가권력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키웠고, 그 억울함의 공간에 정치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함께 언급했어야 했다.

8.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의 폭행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래서 슬프다. 속상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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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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