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기획하여 시작했던 (가칭) 포럼 <광주의미래> 연속 강좌가 어제 마무리 되었다. 강좌는 주로 이승남 선배가 기획했고 내가 섭외를 담당했었다.

우리는 한국의 정치가 크게 바뀌기 위해서 여러가지가 필요하지만 그 중 부족한 것이 지역전략이라고 생각했다. 광주의 정치지형과 민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에서 매우 중요하며 그것을 일구는 역할을 자임하고자 했다.

광주가 어떤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면 광주가 처한 여러가지 문제들, 사실은 우리사회 전체와 연결된 문제들에 대한 대안담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양한 시도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 번의 연속강좌를 준비했고, 강좌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연구와 실천의 접목을 고민할 때이다.

#제1강은 엄혜진 선생의 '지금은 페미니즘 시대'였다. 가장 뜨거운 주제이면서 새로운 기운인 만큼 실천적 모색과 변종과 왜곡, 해석과 비평도 넘치는 주제이다.
애초에 차별이 용인되는 사회신분제도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시작된 그리스 민주주의와 달리, 모든 생각하는 인간존재의 평등함을 근거로 시작된 근대의 기획이 어떻게 해서 흑인과 여성, 장애인과 미성년자를 정치적 평등에서 배제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 엄선생의 첫번째 질문이었다.

강의는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을 소개했고 결국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대면하게 하였다.
페미니즘 정치를 통해 주체의 자리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방도는 무엇인가 하는 쉽지 않은 숙제를 던져준 명강의였다.

엄혜진 선생은 종종 페미니즘을 어떤 감수성이나 삶의 태도의 문제로 격하시키는 것에 분개해 했는데, 이것은 이 운동이 어떤 도덕운동이 아니라 근대의 기획을 정치적으로 완성시키자는 거대한 정치기획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심지어 진보정당 안에서조차 유보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횡행하는 반지성주의는 어떤 의미에서건 정치를 발전시키지 않는다.
다음 장석준 선생 강의와 연결시켜 본다면 좌파포퓰리즘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이 말의 뉘앙스가 갖는 반지성주의와 효과적으로 결별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제2강은 장석준 선생이 말하는 '촛불시대 진보정당의 새로운 길'이었다. 유럽과 미주대륙을 점령하면서 세를 떨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에 맞서는 좌파 포퓰리즘의 분투, 그리고 가히 포퓰리즘 국면이라 할만한 상황에서 촛불혁명이 갖는 보편적인 성격과 특수한 이면에 대한 이야기는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석준은 포퓰리즘 국면에서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담론구성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사회의 자생적 체제비판담론인 갑질없는 나라라는 담론, 땅과 땀의 대결에서 땀의 사람들이 승리해야 한다는 담론, 외부자를 호출하여 인민을 분열시키며 불안정노동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보수와 연대와 통합을 중시하며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추구하는 좌파라는 새로운 진영의 담론이 강조되었다.

좌파 포퓰리즘 정치전략과 함께 다양한 정책과제도 제시되었는데, 영국 노동당을 이끄는 코빈대표가 주장하는 국립투자은행 신설을 중심으로 한 확장적 재정정책과 에너지전환을 앞세운 산업정책의 결합, 4차 산업혁명 시대 대중의 불안에 대한 대답일 수 있는 기본소득론의 정치화, 기본소득론에 문제의식이 있는 다른 좌파들이 제시하는 시민참여소득론과 미국 버니 샌더스 의원과 DSA의 젊은 정치인들이 추진하는 일자리보장제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세번째 강좌는 어제 우석훈 선생과 진행했고,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경제전략'이 그 주제였다. 선생은 광주같은 도시가 잘 사는 것이 우리사회 모두가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청중을 일단 사로잡고 얘기를 시작했다. OECD가 발표한 각국의 저임금노동자 비율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얘기에 들어갔는데, 벨기에가 6%이고 미국은 25% 한국은 24%나 되었다. 벨기에에 태어나면 96%의 비율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한국인은 76%에 불과하고 어두은 측면에 주목하자면 24%의 비율로 비참한 생을 살아야 한다.

정책이 선거와 정치를 지배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무상급식 담론과 같은 예외도 존재했듯이 새로운 정책담론을 고민하는 일은 중요한데, 선생은 완전고용, 기본소득, 직장민주주의와 같은 얘기들을 풀어주셨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인기본소득이라 할만한 기초연금이 이미 도입되어 있고 농민 기본소득이 일부 지역에서 실행되고 있으며 또 확대일로에 있고, 청년배당과 같은 문제의식이 대체로 수용되고 있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기본소득 정책의 도입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직장민주주의에 대한 최근 선생의 연구가 곧 출판될 예정이어서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때문에 선생이 잠시만 언급했던 수소경제의 허구성, 또 장석준의 강의에서 언급된 확장적 재정정책의 한국적 유효성, 아마도 책에서 언급되었을 테지만 직장민주주의에서 특히 노동의 사회적 역할,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선생의 생각 등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연속강좌를 통해 그간 얼마나 책과 담을 쌓고 살았는지 반성할 수 있었다. 학습하고 실천하고 대화하는 것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공부할 책이,
시도해야 할 정치기획이,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ㅠㅠ

Posted by 나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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