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중고등학교에 들어가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있다. 2시간 수업인데 87년 6월항쟁의 시대정신을 소재로 '우리들 시대의 정신'을 얘기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두들 나름대로의 이유를 대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에 대해 한마디씩 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있고, 어느 학교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도 있다.

작년에 같은 주제로 체고에 갔을 때 아이들이 했던 얘기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심판의 판정이 공정하지 않아서 승부에 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심판이 권력이든 뇌물이든 실력 이외의 이유로 의도된 오심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친구들의 시대정신은 '공정'이었다.

최근에 간 학교에서는 특성화고로 지정되기 이전에 입학한 3학년들과 특성화고로 지정된 이후의 후배학년간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식사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원액이 달라서 급식단가가 다르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진위와는 무관하게도 이미 아이들의 박탈감이 상당했다. 이 친구들의 시대정신은 '평등한 밥'이었다.

일자리가 너무 없어서 고민이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심지어 중학교 3학년들이. 아직 취업을 고민할 나이가 아닌 듯 한대도 자신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16살 소년 소녀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가 내 예전시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 나이때 느꼈던 불안감은 어떤 미래가 나에게 올지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추상적 불안이었다면, 이 친구들은 자신들의 앞에 어떤 생이 펼쳐질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불안함이었다. 취업 잘되는 사회가 이 친구들의 시대정신이었다.

가장 많은 학생들은 성평등을 시대정신으로 꼽았고,  여성주의 혹은 반여성주의를 자신들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뽑았다. 오늘 수업을 했던 학교는 남녀공학 중학교3학년 중 남학생 반이었다. 서른 명 중 7명이 성평등을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는데, 한 친구가 '성평등과 메갈반대'라고 말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의견을 설명해보라 권했더니, 여성들이 지나치게 우대받거나 특혜를 받고 있으며 메갈들이 설쳐서 그리 된 것이란다. 그래서 남학생들 일부에게는 성평등과 메갈반대는 같은 의미였다.

어찌되었든, 어떤 의미에서든 여성주의는 중요한 시대의 화두가 되었고 더 젊을 수록 이것을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주의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하는 것에는 그 방향이 뭐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동의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편견없이 여성주의적 인식의 원형과 근거를 살펴보고 토론하고 고민하는 것 외엔 다른 정도는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유도하곤 했다.
페미니즘 정치의 고유한 인식론과 과제를 깊이있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정치도 그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

어쨌든 우리 중고등학생들, 청소년들이 인식하는 그들의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다음 주 한 강의만 더 하면 올해는 끝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참 보람된 직업이겠구나, 다만 정말정말 힘든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매번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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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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