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만들 수 없지만, 시대는 그렇지 않다.

위와 같이 분명한 말은 아니었지만 2년전 담벼락을 돌아보니 그 즈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첫 번째 촛불집회가 있었다. 정의당은 원내 정당중 유일하게 당의 깃발을 들고 그 자리를 찾았다. 그 며칠 전 정의당은 상무위원회 회의를 통해 무거운 마음으로 박근혜 퇴진을 공식 주장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쓴 글을 보니 '용기를 내어' 이 결정을 했다고 쓰고 있었다. 

2017년 겨울이 오면 어차피 박근혜는 대통령에서 물러날 운명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이 대통령의 시간은 5년이며 연장은 불가하다고 정해놓고 있었으므로 그 추운 날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우리들의 시간을 혹사하지 않았더라도 박근혜는 1년이면 보지 않게 될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은 그 1년을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인내심 없는 사람이었는가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우리들은 박근혜의 시간을 압축함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겠다. 박근혜에게 남은 14개월의 임기를 좌와 우에서 압착하고자 했던 것이다. 양손으로 적당한 힘을 주어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더는 압착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양 팔의 근육이 떨릴때까지 힘을 냈다. 얼굴이 빨개지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설때까지 힘을 내어 박근혜의 시간을 누르고 눌러 압착했다. 적폐의 시간을 압축하는데 성공했다. 박근혜가 탄핵되던 날, 우리 모두는 압착된 그 시간이 엄청난 힘으로 다시 펼쳐져 우리를 역사 앞으로 전진시킬 것이라고 희망했고 그렇게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와서 더 선명해 진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목표는 박근혜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지만, 시대는 피와 땀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갑질 앞에 고개 숙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동수당과 함께 태어나 무상교육으로 성장하고 등록금 없는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나때문에 부모님의 한숨 소리가 방을 메우지 않아도 되는 시대. 정부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며 그렇게 낸 세금으로 내 부모의 노후를 돌보고, 나의 노후를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함께 짊어지므로 사회가 경쟁이 아니라 연대의 원리로 운영되는 그런 시대라면, 부당한 갑질 앞에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땅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자산증식과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가진 희망의 총량이, 사회정의의 대의 앞에서 투쟁하여, 후자의 사람들이 전자의 사람들을 패퇴시키는 그런 시대를 앞당기고자 했다. 이런 사회에서라면 내 자식 누일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하려고 애쓰는 부모님의 노력이 온전히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쓰일 수 있고, 내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나의 땀이 나의 가치를 만들 것이므로 타인을 원망할 일도 없는 시대가 될 것이었다. 

우리는 체제의 생존을 걱정하는 북한을 포용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가 손을 잡고 사회연대를 구상하는, 우리땅을 찾은 난민에게 친절하며, 여성들의 일상적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는, 그런 시대를 만들고자 했었다. 이것에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사회불안과 분열을 획책하지 말라고 호통치는 시대로 나아가고자 했었다. 

그러므로 촛불혁명의 문재인 정부라면 박근혜의 다음 대통령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정부여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도 하고자 했으나 감히 감행할 수 없었던 은산분리를 완화했고, 그들의 힘으로도 못해냈던 규제프리존법이 통과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질주를 멈추고 위와 아래가 만나고 있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자유한국당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소선거구제 양당제 아래에서 기회를 엿보다 30%나 40%의 지지율을 회복하여 부당한 선거제도의 덕으로 의회를 장악하게 하는 요행수는 지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당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시대의 교체가 아니라 다음 총선의 시간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촛불혁명의 의의가 아니다. 

나는 안타깝지만 이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성격을 다시 규정할 시간이 왔다고 느낀다. 

Posted by 나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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