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월에...

오늘 하루 2018. 12. 24. 13:17


교육부장관이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교육분야 성희롱 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내 눈에 띄는 내용은 초중등과정에서 인권.양성평등분야 선도교원 양성, 교사 학습공동체 운영지원, 양성평등 연구학교 지정 등의 내용이다. 발표된 내용 중 중요한 조치라고 생각했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선도교원 양성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였지만 페미니스트 교사 양성이라고 판단되는 이 사업의 양적 양성목표가 내년에 170명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성평등 교육을 연구하는 교사 학습모임 지원의 양적 목표치나 예산은 명기되지 않았고, 연구학교지정은 내년도에 3개, 내후년에 17개 학교다. 3개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각 하나씩 연구학교를 지정하겠다는 것이고, 17개면 17개 광역시도에 하나씩 지정하겠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래서 어느 세월에 양성평등교육을 메인스트림으로 만드나 싶다.

나는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 하는 논쟁이 유익하다고 보지 않지만 이제 문서에 확실히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이 자리를 잡았다. 보수진영이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싫어하고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고집하는 것이 문제인 것은, 양성평등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말이라서 문제인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이 말에 담긴 양성간의 평등조차도 제대로 공감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양성간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같은 말이다. 두 단어는 맥락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 성평등은 좋은 말이고 양성평등은 쓰면 안되는 나쁜 말이 아니다. 말을 분절하여 왜곡하는 보수진영 전략가의 의도에 말려들면 안된다.

생각이 좀 많았던 부분은 아래 기사에 담긴 내용이다. 어제 발표중 언론은 성폭력 피해학생이 원하면 즉시 전학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교육부 보도자료에는 이 내용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지는 않다.

전학 보장은 어제 발표의 핵심이 전혀 아니었으므로 언론사 데스크의 성평등 의식이 문제라 하겠다. 성폭력 피해자가 '정'원하면 전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보다 수백배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학교생활을 유지하고 이미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삼더라도 그 학교의 성평등의식과 문화가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파내야 한다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교사든 동료학생이든)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환경조성을 피해자가 신뢰하지 않을 수 있기때문에 전학보장은 '보충적'인 조치여야 마땅하다. 
그리고 보충적인 조치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좀 이상하고, 더 중요한 쟁점을 가리게 한다는 생각이다. 
혹시라도 한국일보(사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지만) 데스크가 '성폭력을 당했으면 언른 도망가게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제목을 저리 뽑은거라면, 또 결과적으로 저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공간에서 배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일정한 정도의 성평등한 학교만들기 매뉴얼을 학교별로 작성하도록 하고 그 수준과 준수정도를 정부조달이나 입찰, 예산배정과 연계시키는 정도의 과단성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다.

그래서 어제 발표에 대한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느세월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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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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